온조지(園城寺)[미이데라(三井寺)]

온조지[미이데라]는 덴다이지몬슈(天台寺門宗: 천태사문종)의 총본산(한 종파에 속하는 각 본산을 통할하는 절)으로, 예로부터 일본의 4대 큰절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. 그 역사를 살펴보면, 덴치(天智)·고분(弘文)·덴무(天武)천황의 칙명에 의해 고분천황의 황자·오토모요타(大友与多)왕이 전원성읍(田園城邑)을 영합하여 건립하였으며, 덴무천황으로부터 「온조(園城)」의 칙액(임금이 손수 쓴 편액)을 하사 받아 「나가라산온조지(長等山園城寺)」로 칭해진 것으로 시작된다. 일반적으로 「미이데라」로 불려지는 것은 덴치(天智)·덴무(天武)·지토(持統)천황이 태어났을 때 목욕물로 사용된 영천(霊泉: 영검이 있는 샘)이 있어서 「미이노테라(御井の寺: 우물의절)」로 불려졌던 것을, 후에 지쇼(智証)대사가 당 절의 곤기(厳儀)·산부칸조(三部潅頂)의 법수(法水)로 사용하던 것에서 유래한다.

긴 역사상에 있어 당 절은 여러 차례의 병화로 인해 소실되었지만, 도요토미(豊臣)씨나 도쿠가와(徳川)씨의 조력으로 재흥되어 현재에도 국보·중요문화재·명원 등 귀중한 사보(寺宝: 절의 보물)를 다수 전하고 있다.

pagetop

지쇼(智証)대사

지쇼(智証)대사

개조(開祖: 창시자) 지쇼대사 엔친(円珍)스님은 814년 사누키(讚岐)에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고보(弘法)대사의 조카딸이다.

히에이잔(比叡山)에서의 12년 수행 중 대사일생의 신앙을 결정짓는 기후도손(黄不動尊)을 감득하였으며, 이것은 지금도 비불(평소에 공개하지 않는 불상)로서 전해지고 있는 국보·기후도손(金色不動明王: 금색부동명왕) 화상이다. 859년에 온조지 초대수장이 되었으며, 868년에는 제5대 덴다이슈(천태종)의 수장으로서 24년의 긴 시간에 걸쳐 일본불교의 발전에 헌신했다. 891년 10월29일, 78세의 나이로 입적하였고 후에 다이고(醍醐)천황에 의해 「지쇼(智証)」의 대사호칭이 내려졌다.

pagetop

|전설| 벤케(弁慶)의 히키즈리(끌고 가는) 종

나라(奈良)시대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이 범종은, 옛날 다와라노토타히데사토(俵藤太秀鄕)가 미카미야마(三上山)의 지네퇴치 사례로 용궁으로부터 가져온 종을 미이데라(三井寺)에 기증한 것으로 전해진다. 그 후, 산몬(延暦寺: 엔랴쿠지)과의 전쟁에서 벤케가 빼앗아 히에이잔(比叡山)에 끌고 옮겨가서 종을 쳐보니 “게이-·게이-”(간사이지방 말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미)로 울려 퍼졌고, 그것에 노한 벤케는 「그렇게 미이데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인가!」하며 종을 계곡 밑으로 던져 버렸다고 한다. 그 당시의 것으로 추정되는 상흔과 균열 등이 남아있다.




|전설| 히다리진고로(左甚五郎)의 용

|전설| 히다리진고로(左甚五郎)의 용

미이데라의 명칭이 생겨난 영천(霊泉) 아카이야(閼伽井屋: 우물 건물)의 정면에는 유명한 히다리진고로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용의 조각이 있다. 옛날 이 용이 밤마다 비와코(琵琶湖)호수에 나가 마음껏 날뛰는 것 때문에 곤란했던 진고로가 스스로 용의 눈알에 대못을 박아 넣어 조용하게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. 지금도 이 용은 조용히 우물 건물의 정면에서 미이데라를 지켜보고 있다.

pagetop

참배순서

니오몬(仁王門)[중요문화재] 니오몬(仁王門)[중요문화재]
곤도(金堂)[본당·국보] 곤도(金堂)[본당·국보]
쇼로(鐘楼)[미이(三井)만종·중요문화재] 쇼로(鐘楼)[미이(三井)만종·중요문화재]

아카이야(閼伽井屋)[미이(三井)의 영천·중요문화재] 아카이야(閼伽井屋)[미이(三井)의 영천·중요문화재]
잇사이쿄조(一切経蔵)[중요문화재] 잇사이쿄조(一切経蔵)[중요문화재]
사이고쿠 주욘방후다쇼(西国十四番札所) 간논도(観音堂)[중요문화재] 사이고쿠 주욘방후다쇼(西国十四番札所) 간논도(観音堂)[중요문화재]

산주노토(三重塔: 삼중탑) 산주노토(三重塔: 삼중탑)

pagetop
Copyright © 2010 Shiga-miidera All rights reserved.